비는 한 시간 전에 그쳤지만, 강남의 건물들을 타고 오르는 네온사인들을 마치 빛나는 담쟁이덩굴처럼 비추며 보도는 여전히 거울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지만 거리는 비어가는 대신 오히려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편의점 우산 아래서 손을 잡은 연인들 강남가라오케 , 어디서 식사할지를 두고 유쾌하게 실랑이하는 친구들, 그리고 지하 계단이나 3층 창문 등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웅성거리는 음악 소리와 거침없이 당당하게 노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야말로 강남의 진정한 사운드트랙이다. 이 지역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세련된 팝송이 아니라, 커다란 화면이 있는 작은 방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온 마음을 다해 부르는, 다소 음정이 맞지 않아도 혼란스럽지만 진심이 담긴 합창 소리 말이다.
‘노래방’은 이 지역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훨씬 전부터 존재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다. 세상이 ‘강남’이라는 이름을 알기도 전부터, 현지인들은 일상에서 벗어나거나, 축하하거나, 슬픔을 달래거나, 혹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이 작은 방들을 찾곤 했다. 방식은 간단하다. 시간 단위로 방을 빌리고, 수천 곡의 노래 중 원하는 곡을 골라 부르면 된다. 무대도, 낯선 관객도, 노래를 마친 뒤 화면에 뜨는 점수 외에는 그 누구의 평가도 없다. 하지만 그 작은 방 안에서는 아주 오래되고도 즐거운 일이 벌어진다. 수줍음 많던 사람은 대담해지고, 지쳐 있던 사람은 활력을 얻는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친구의 친구로서 낯선 사이였던 이들이 어느새 당신의 백댄서가 되고, 응원단이 되며, 코러스가 되어준다.
강남의 노래방에 처음 들어설 때 느끼는 낯선 감각은 아주 기분 좋은 경험이다. 로비는 대개 비좁고, 1990년대 가수들의 빛바랜 포스터나 콜라부터 숙취 해소제까지 온갖 물건을 파는 자판기로 꾸며져 있다. 작은 TV로 드라마를 보던 중년 여성 직원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열쇠와 리모컨을 건네준다. 번호가 적힌 문들이 줄지어 있는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나 계단으로 이동하면, 각 문 뒤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어느 방 뒤편에서는 대학생 무리가 록 발라드를 목청껏 부르고 있고, 또 다른 방에서는 중년 부부가 젊은 시절 즐겨 듣던 사랑 노래에 맞춰 부드럽게 몸을 흔듭니다. 세 번째 방에는 혼자 온 가수가 앉아 똑같은 후렴구를 반복해서 연습하며, 오직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완벽한 음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방 안의 장비는 단순하면서도 소박합니다. 커다란 화면, 묵직한 마이크,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버튼이 달린 조작 패널, 그리고 어린아이 몸무게만큼이나 묵직한 노래 책이 놓여 있습니다. 이 노래 책은 보물과도 같습니다. 여기에는 K-팝이나 미국 팝송뿐만 아니라 일본 엔카, 중국 발라드, 필리핀의 사랑 노래, 심지어 할머니께서도 아실 만한 한국 민요까지 담겨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곳의 노래방 문화가 단순히 노래 실력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곳은 자신의 기분과 추억, 그리고 그 순간에 딱 맞는 노래를 찾아가는 공간입니다. 번호를 입력하고 MIDI 반주가 시작되면, 어느새 그 방은 오롯이 당신만의 공간이 됩니다.
점수 시스템은 잔인하면서도 다정합니다. 노래가 끝나면 화면에 100점 만점 기준의 점수와 짧은 코멘트가 표시됩니다. 어떤 때는 95점과 함께 ‘타고난 가수’라는 찬사를 듣기도 하고, 어떤 때는 60점과 함께 ‘최선을 다했다’는 격려를 받기도 합니다. 기계가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사실 그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점수가 나오기 직전의 순간, 즉 노래를 부르며 방 안의 모두와 하나가 되는 순간, 탬버린 소리가 울리고 조명이 반짝이며 누군가는 숨이 넘어갈 듯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그 어떤 완벽한 음정보다도 값진 것입니다.
강남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 어디에나 있는 노래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노래방들이 밀집해 있고 종류 또한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불과 몇 블록 안에서도 우주선처럼 생긴 방, 감옥처럼 꾸며진 방,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하는 아주 오래된 기계가 있는 방, 그리고 전용 화장실과 칵테일 메뉴까지 갖춘 호화로운 방을 모두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곡 단위로 요금을 내는 곳,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곳, 혹은 인원수대로 요금을 받는 곳 등 다양한 형태의 노래방이 있습니다. 24시간 문을 여는 곳,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곳, 정중히 부탁하면 주인이 함께 듀엣을 불러주는 곳도 찾을 수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고객은 왕처럼 대접받습니다. 설령 음을 하나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말이죠.
하지만 강남 노래방의 진정한 매력은 화려한 인테리어이나 최첨단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회적 위계질서가 깊게 뿌리박힌 도시에서, 노래방은 그 엄격한 규칙이 잠시 느슨해지는 보기 드문 공간입니다. 평소 웃음기 없던 상사가 우스꽝스러운 동요를 부르고, 조용하던 인턴이 숨겨둔 랩 실력을 뽐내기도 합니다.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트로트 후렴구를 소리 나는 대로 익혀 부르면 사람들은 마치 영웅에게 보내는 듯한 박수를 보냅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같은 가사를 외칠 때면 언어와 나이, 사회적 지위의 경계는 희미해집니다. 그 방 안에서 당신은 직함이나 연봉으로 정의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하나의 목소리일 뿐이며, 바로 그 점이…